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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변 성공한 펑위샹 “황제놀음 푸이, 20분 내에 내쫓아라”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60〉 덩샤오핑은 펑위샹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펑이 북벌을 결의한 우위안에 거대한 기념광장을 조성했다. [사진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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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허사변 참가한 요시코, 일본 기녀들 동원해 관동군 격려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46〉 중국은 나라가 크다 보니 일본과 내통한 정권도 많았다. 1933년 3월, 자치정부 선포식에 참석한 인루겅. 일본 패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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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코 “중국인들끼리 죽고 죽이게 정보 넘기자” 일본 설득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45〉 1934년 6월 16일 ‘국민혁명군 중앙군관학교(황푸군관학교의 본명)’ 성립 10주년 기념식을 마치고 열병식을 진행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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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중국어 유창한 청왕녀, 일본의 중국 침략전 기획 참여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44〉 1932년 겨울 도쿄에 도착한 리튼조사단 일행. 왼쪽 넷째가 단장인 전 영국 총독 리튼. [사진 김명호] 1927년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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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무차관, 리덩후이 추도식 참석…中 "대만에 불행 올 것"
'대만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 총통의 추모식이 오는 19일 열리는 가운데, 미국이 국무부 고위 간부를 파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17일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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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년 1월 美대통령 취임식 전후 대만 무력 공격 통일"
중국이 내년 1월 미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대만에 대한 무력 통일에 나설 것으로 전망한 미 해군대학(NPS) 저널의 한 글이 중국에서 커다란 화제다. 글을 쓴 이는 퇴역 장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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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팡 “난세 여성, 조국과 후세 영광 위해” 중국어 취임사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39〉 우이팡(둘째 줄 오른쪽 첫째)은 현안에 관한 회의를 자주 열었다. 1933년 일본군이 화베이(華北)를 점령하자 ‘국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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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은 건 6·25전쟁 때문이었다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항일전쟁 시절 미국 화교들이 미국인들에게 모금한 돈으로 중공 근거지 옌안에 세운 뤄싼지(로스앤젤레스의 음역) 탁아소는 중공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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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전투기 조종사 출신 천라드, 중국 공군의 날개 활짝 펴다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32〉 1943년 10월 29일, 중국 항공위원들과 중국 공군기지를 시찰하는 천라드. 앞줄 오른쪽 첫째는 국민당 군 총 참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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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 펑더화이 “지상 전쟁은 중요치 않아…승패는 하늘서”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30〉 중공은 5대 이상을 격추한 전투기 조종사에게 1급 전투영웅 칭호를 줬다. 왕하이(왼쪽)는 미군 전투기 5대를 격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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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작가 양셴이 별세, 중화권 ‘중국 통째로 번역’ 추모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28〉 양셴이(뒷줄 오른쪽 다섯째)의 집에는 늘 문화인들이 붐볐다. 뒷줄 왼쪽 첫째가 혁명만화가 딩충(丁聰). 둘째는 명 극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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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양회" 외치던 중국의 돌변···영화 '전랑'처럼 거칠어졌다
지난 24일 홍콩 경찰이 시내에서 벌어진 시위 현장에서 체포된 참가자를 길바닥에 눕혀 놓고 머리를 누르고 있다. 중국이 힘과 독설, 보복을 앞세워 벌이는 늑대 외교의 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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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성공' 대만은 왜, WHO '초대 받지 못한 손님' 신세 됐나
20일 제2기 임기를 시작하는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지지율이 코로나19 방역의 성공으로 그야말로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2기 취임식을 앞두고 대만에서 진행된 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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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인 살해 미군 용의자 무죄, 반정부로 비화한 반미운동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25〉 청년 구국단은 5·24 반미운동에 동원된 장징궈의 친위세력이었다. 기자들에게 구국단 설립 취지를 설명하는 장징궈.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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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제거당할 위기의 장제스, 구세주는 북한 김일성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24〉 1957년 5월 24일 오후. ’미군의 인권 경시를 항의한다“는 팻말을 들고 미 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는 청궁(成功)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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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살해한 미군 무죄 판결, 대만 반미감정 뇌관 터져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23〉 1957년 5월 24일, 미국대사관을 흉물로 만든 타이베이 시민들. 대사관뿐만 아니라 미 공보관도 때려 부쉈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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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쫓겨온 외성인, 수만 명 학살 후 40년간 계엄령 통치
━ [중국 기행 - 변방의 인문학] 대만의 비극, 2·28 시위 대만 본성인 차별 철폐 등을 요구하는 2·28 시위의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관의 조형물. 훗날 대만 정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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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언라이 “미국은 대만을 하와이처럼 만들 생각이다”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22〉 대륙은 사유제 폐지 후 삼면홍기(三面紅旗)운동을 발동했다. 그 중 대약진운동은 철 생산을 제고하기 위해 사진과 같은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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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대륙에 밀사 보내 마오쩌둥의 패를 파악하라”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21〉 쑹시롄(둘째줄 왼쪽 다섯째)은 황푸군관학교 생도 시절 저우언라이가 공산당 입당을 권했지만 거절했다. 군 경력도 화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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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징궈 “우리는 복잡한 시대에, 복잡한 나라에 태어났다”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20〉 중국 국가주석 장쩌민은 선쥔산을 가볍게 대하지 않았다. 대화 녹취도 수락했다. 일국양제의 시험구 홍콩반환 기념식에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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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쥔산 회유 실패한 쉬자툰, 진융 집 만남 엉터리 기록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19〉 1997년 7월 1일 0시, 영국은 홍콩을 중국에 반환했다. 육, 해, 공 3군이 동시에 진입했다. 6월 30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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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싸였던 신화통신 홍콩분사, 중공 지하당원이 절반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12〉 랴오청즈(앞줄 오른쪽 셋째)는 한반도와도 인연이 많았다. 1951년 1월, 중국지원군 위문단 이끌고 한국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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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왜 죽지 않고 살아서 왔나” 귀환 포로들 혹독한 심문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07〉 지룽항에서 반공의사를 맞이하는 대만 주재 미군사령관. 왼쪽 첫째는 국방부 정치부 주임 장징궈. [사진 김명호]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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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군 개혁 시급하다”…펑더화이 극비리 귀국 전령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양더즈(오른쪽)와 양융(왼쪽), 양청우(가운데)는 나이·경력도 비슷했다. 3양이라 불렸다. 양더즈는 훗날 총참모장까지 지냈다. [